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앎에 대한 자신감과 모름에 대한 겸손함 그 사이 어딘가
남원식's avatar
Apr 14, 2025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다시. 우리는 어디까지 아는지 모른다.

 
우리는 최고의 선택을 위해
여행지를 고르고, 숙소를 구하고, 택시 아저씨 관상을 고르고, 세 갈림길 중에 하나의 길을 택한다.
항상 여행 후 비행기 안에서 돌아보면,
계획의 자신감, 과정의 발버둥과 상반되게
민망할 정도로 우연히 뒤덮인 여정이다.
 
주식 포트폴리오를 짜면서,
개같이 번 돈에 비해, 십 진수 단위로 단순하게 딱딱 떨어진 비율로 나름의 타이슨 라이벌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의사 결정권자가 새로운 기능을 가져오면, 개발자들은 나름의 짧은 식견으로 타이슨 라이벌 시나리오를 써 내려간다. 결국 타이슨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짧은 식견 탓에, 수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
 
단, 시간이 충분하다면 모른다는 것을 최소한으로 모를 수 있을 확률이 높다.
시간을 충분히 쥐여주는 특혜는 대학생과 인문학 외에 있을까?
그렇다면, 대부분이 자신의 모름에 대한 모름에 절망으로 이 글에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지만, 선택의 순간은 모른다는 것을 온전히 얼마나 모르는지 파악하기 전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앎의 깊이와는 꽤 유의미하게 상관없이,
옳은 우연으로 선택의 순간에 옳은 판단을 하는 것과
그른 우연으로 선택의 순간에 그른 판단을 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고심한 판단에 비해 운명은 굉장히 무심하게, 비이성적으로 찾아온다.
사람들은 때때로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진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과 비합리로 세계는 구성되어 있다.
이 깨달음은 두려움과 함께 찾아온다.
두려움 앞에 우리의 판단은 겸손과 동시에 경솔하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아고라의 철학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철학자들이 비웃자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지만,
너희들은 너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자들이다”라고 말했다.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주의 팽창과 수축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물리학으로 파악 가능한 물질이 4.9%, 암흑물질이 26.8%, 무언지 모르는 물질이 68.3%라고 한다. 지금까지 인류의 문명과 과학을 총동원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물질은 겨우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배웠다. 정말 아는 것이 힘일까?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보면 사실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우리가 아는 지식은 마치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텅 빈 스크린이 없으면 상영될 수가 없다. 스크린이 울고 웃는 영화를 드러내는 바탕이 되듯이, 모르는 것을 바탕으로 삼아야 아는 것이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제대로 모르면서 우리는 남을 평가하고 비난한다.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이 진짜 그 사람일까? 내가 자식을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부모를, 친구를, 남편을, 아내를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모를 뿐, 오직 모를 뿐에서 출발해야 우리는 타자 앞에 겸손해져 진실에 닿을 수 있다. 진리는 온 우주에 무시무종의 존재로 편만해 있습니다. 눈앞의 그 일을 아직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대답을 듣고 싶은 날이다.
김수상<시인> 참고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이제 소프트웨어 공학으로 돌아와보자.
반복된 기능을 개발하지 않는 이상, 구현의 생소함은 계속된다.
  1. 목표가 주어지고,
  1. 구체화되고,
  1.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1. 정리해서,
  1. 분석하고,
  1. 설계해서,
  1. 적용
하는 사이클은 반복되지만,
여전히 각종 버그는 새롭다.
QA가 갖고 온 오류는 신박하다.
유저의 비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창의적이다.
 
“예상치” “버그”는 공존할 수 없다.
항상 예상치 못한 버그예상한 일정만 남아있다.
 
매일매일이 위와 같은 사이클의 연속이다 보니,
한없이 나 자신이 작아짐과 동시에
다시 일어서는 것에 대한 역치가 높아짐을 느낀다.
 
완전함이라는 표현의 함정을 항상 인정하고, 불완전과 공존하는 법을 기르는 것이 좋은 자세이다.
ex)
  • 자신하는 이에 대한 의문이 속에서 솟구친다. (감히?)(책임 있는 말인가?)(왜 반례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이지?)
  • 자기방어가 줄어듦과 동시에 경청과 배우려는 자세가 생긴다.
  • 돌아가는 코드 리팩토링
  • 언어 문법 공부보다는 회화(틀릴 용기)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마?

지금까지는 큰 틀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담았다.
그렇다면, 설계는 의미 없나?
사람은 깜깜한 곳을 싫어하듯이, 사람은 타이슨 라이벌 시나리오라도 세워야지
어둠과 타이슨에게 한 발자국 내달 수 있는 용기책임이 부여된다.
 
49%보다는 51% 인생 가챠 게임이 게임을 임하는 기세에서도 다르다.
 
다만 위 사실을 알든 모르든 선택의 품질에 있어서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
다만 기회와 선택을 대하는 마인드는 크게 바꿔준다.
개선의 연장선에 선택, 선택이 긴 호흡으로 존재할 뿐이다.
 
5세 이하 침팬지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개선하고자 하는 용기와 반복 이라고 이해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 또한 당위의 엄밀함 정도가 아닌
높은 확률의 패(지능)를 갖고, 큰 수 법칙(실행 횟수)의 정도를 들이박은 사람들이라고 이해한다.
 

끝으로 AI는?

AI는 아직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선택의 책임과 두려움을 살아생전 경험해 보지 않고서야 모르니까.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학습의 영역이라,
AI가 영원히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경솔하다고 하면 안 되겠지?
 
앎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AI의 영역이 확고해지고 있다.
사람과 AI의 공존은
AI의 앎에 대한 자신감과
사람의 모름에 대한 겸손함 그 사이 어딘가가 되지 않을까?
 
💡
“모든 판단은 증명 및 관측되기 이전에는 하나의 의견이다.”라는 판단..!
 
참고
https://suitdio.com 대장장이(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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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영남일보[문화산책]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 | 영남일보 | 이은경 기자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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